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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전투>: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알베르 카뮈는 그의 저서 ‘시지프 신화’에서 인간의 삶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에 빗대어 부조리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결국엔 떨어질 수밖에 없는 무거운 돌을 높은 산 정상으로 올려야만 하는 운명을 가진 시시포스의 삶은, 그와 동일하게 인생이란 무게를 짊어지고 희망과 절망을 반복하는 인간의 고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는 역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세계를 꿈꿨으나 누군가는 자신의 통제 하에 움직이는 세계를 꿈꿨다. 이에 맞서 이성과 도덕의 힘으로 평화를 외친 이들도 있었으나 물질과 권력을 앞세워 폭력으로 잠재운 이들도 있었다. 이처럼 이상과 현실이 교차하고,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안고 있는 역사는 시시포스의 그것처럼 부조리하다.

영화 <칠레전투> 중러닝타임 268분의 대작 ‘칠레 전투’는 이러한 비극의 역사의 한복판에 있는 칠레의 모습을 기록한 작품이다. ‘부르주아의 봉기’, ‘쿠데타’, ‘민중 봉기’의 3부작으로 되어 있는 영화는 사회주의 정부를 세워 노동자와 서민의 나라로 향하려 했던 아옌데 정권의 몰락을 그린다. 1부에서는 각각 정파들의 입장을 적절히 분배하여 배치하고, 2부에서는 아옌데가 미 제국주의를 등에 업은 우파 정권의 쿠데타로 죽음을 맞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3부에선 연대를 통해 평등한 세상을 꿈꿔보려는 노동자들의 노력을 그리며 끝을 맺는다. 그러나 영화가 제시한 이상과는 반대로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결국엔 민중이 아닌 자본이 이겼으며 시민이 아닌 군인들이 권력을 잡았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엔 수많은 사회적 손실이 있었다. 나라는 양쪽으로 분열되어 소모적인 논쟁이 지속되고 더 이상 결론을 도출할 수 없는 상태로 두 극을 향해 치달았다. 그 속에서 고통 받는 건 죄 없는 시민들, 각 개인이었다. 부르주아지에 동의하는 중산층도 권력의 선동에 휘말린 우파 시민들도 그리고 노동자의 나라를 건설하려던 평범한 서민들도 모두가 무기력한 피해자였다.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은 누구나 같을진대, 결과는 철저한 반목과 대립이었던 것이다. 가해자들은 이념을 악용하고 조장하는 무리들이었다. 자본과 권력을 획득하려는 목적을 정치란 이름으로 포장하여 제국주의의 야망을 펼치려는 이들. 세속적인 욕심으로 채워진 그들은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가 시민들의 삶을 서서히 부식시키고 갉아 들어갔다. 강력한 무기와 자본을 거머쥔 제국주의자와 그에 동조하는 독재자 앞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무기력한 존재였다.

영화 <칠레전투> 중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던 이유는 ‘역사는 민중이 만들어간다’는 아옌데의 마지막 말 때문이었다. 예부터 외쳐온 인간의 이성과 도덕이 물질과 자본 앞에서 힘없이 무너지는 모순을 보았음에도 절망할 수 없었던 것은 인간답게 살고자하는 많은 이들이 함께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부조리는 이들의 소망을 다시 이상과 현실의 순환 속에 몰아넣는다. 지금까지도 세계는 뺏으려는 자와 뺏기지 않으려는 자로 구분된다. 영화의 칠레도, 바다 건너 아프리카도, 그리고 이 나라 한국도 서로 다른 형태의 부조리로 신음하고 있다. 이렇듯 빠져나갈 곳이 없을 것만 같은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다시 한 번 물을 필요가 있다.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꿈을 꿀 것인가? 참고로 앞에서 언급한 부조리의 철학자 카뮈는, 레지스탕스였다.

 

칠레전투 예고편 보러 가기

 

재영

 

※원문: http://sarangbang.or.kr/hrfilm/index.php?option=com_content&task=view&id=516&Itemid=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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