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홍반장이 아니라, 홍길동인줄 알았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저기 있는줄 알았는데, 어느새 옆에 와 있는. 이 요상한 남자의 정체는?


동네 반장이란다. 남자의 이름은 홍두식. 딱히 직업은 없는듯한데,

못하는 게 없다. 일당 오만원이면 인테리어에, 골치 아픈 문제 해결에,

외로운 밤(?) 술 친구에, 대리 애인까지 해준다.


자신이 우주의 머나먼 별에서 왔다고 생각하는

혜진과, 자신을 찾으러 온 우주를 헤매고 다닐

어른 왕자(?)를 기다리는 혜진에게


지구인 괴롭히지 말고, 니네 별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홍두식은

참으로 묘한 남자였다. 그런 남자와 자존심 강한 혜진은

참으로 묘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친구는 아니지만, 애인이라 하기도 뭐한 관계.

조금씩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되지만,

우린 친구라고 선을 그어버리려는

두식과 그런 두식에게 못내 서운함을 느끼는 혜진.

 
혜진의 감정은 어느새 두식에 대한 사랑으로 변하고,

두식에게 사겨보자고 말하지만, 두식은 못들은 척한다.

자존심이 강한 혜진은 거절 당하고, 농담했다고 웃어 보이고

조금씩 두식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아서,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꺼내지만, 기차가 지나가버린다.


아마, 두식은 다 알았을 것이다.

혜진은 결국 두식을 떠나게 되고.


크리스마스에 오디션 보러 간

통기타 가수 대신 두식은 라이브 카페 무대 위에서

혜진을 생각하며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부른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빈 방문을 닫은채로...하얗게 밝아오는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두식의 눈에 고인 눈물은, 두식 또한 혜진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이 노래만큼 두식의 감정을 잘 표현한 노래가 있을까.

이 영화에서는 남녀 주인공이 절대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마음이 보는 이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는 독특한 감성의 멜로 영화다.

 

 

왜 배를 내려놓지 않고 언덕 위에 올려 놨냐는 혜진의 질문에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고 슬그머니 넘겨버렸던 두식.


그 이유는 혜진의 친구가 낱낱이 조사해 수첩에 적어온

홍반장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에서 알 수 있다.


두식의 부모님은 어렸을 때 교통 사고로

세상을 일찍 떠났고, 두식은 쌀집 할아버지에게

입양되어 살았으나, 할아버지 또한 세상을 떠나버렸고 -

두식은 그후 그 허름한 창고 같은 집에서 혼자 살았다는...


뒤에 홍반장은 그 이유를 혜진에게 이야기해준다.


홍반장은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이 자신의 곁을 떠난다고 했다.


그래서 배를 내려놓으면 저 혼자 멀리

떠나버릴 것 같아 언덕 위에 올려두었다고.

자신은 그저 곁에 있어주기만 하면 되는거였는데...

라고 말하면서. 혜진은 그런 홍반장에게 자신이 곁에

있으니, 이젠 배를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혜진이 언제 술 한잔

하러 올지 몰라, 매일 매일 혜인이 좋아하는 와인을

사놓아, 그게 홍반장네 집 찬장에 빼곡히 들어찼는데,

 

갑자기 찾아온 혜진을 보고 홍반장이

찬장문을 열어 와인을 꺼냈는데,

그 찬장문이 덜 닫히는 바람에 스르르 열리면서

혜진이 빼곡하게 들어찬 와인병을 보게 되는 장면이었다.


홍반장의 숨겨진 마음이 드러나는

굉장히 멋진 장면이었다.


 

 

나는 이 영화를 두번 봤는데, 두번 다 느낌이 좋았다.

다시 볼때도 웃기는 장면에서는 처음과 똑같이 웃기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장면에서는 똑같이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굉장히 세련된 느낌의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조금 심심한 것 같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더욱 매력이 되는 영화 같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내게 두번이나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장면의 대사를 올려본다.

 


두식 :  잘들어. 집중해야 돼.

 

바닷물에 반사되는 달빛이 얼굴에 느껴져?

귓가를 스치는 바람은 느껴져?

 

같이 놀아달라고 장난치는 것 같지 않냐?

 

이 모든걸 다같이 느껴봐봐.



혜진 :  이런거였구나. 내가 몰랐던 세상이. 너무 좋다. 

 

 

이 글은 2005.09.06일에 작성되었습니다.

 


가슴이 외친다 산삼 장터 꿈꾸는 호야 보드사랑 간지꼬마 공부의 오타쿠가 되자 ihs 드라이브 기범이네 월드탑 센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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